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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Drink

[후기] 전복을 정ㅋ벅ㅋ



장마가 끝났다는 소식이 24번 채널에서 들려올 때쯤이었어요.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 이제 막 인사를 나누려는 순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전에 일하던 '남자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잡지의 선배였고, 다급한 목소리로 뜻 밖의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얼마간 일에 대해 갈등을 거듭하다 '예스맨'이 되기를 마음 먹은 바였지만, 그래도 뭔가 망설여지는 제안이었어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데, 일박 이일 일정이고 장소는 통영이야. 그리고 주제는 전복이고..'  

전복이라... 오래지 않아 알려 드리겠다 약속하고 전화를 끊은 후 잠시 생각했어요. 그동안 '피처기사도 해보고싶다'고 생각했었고 전복도 그 범주 안에 들어서기 충분한 주제였지만, 집에서 밥해 먹는 것도 귀찮아 할 만큼 요리랑은 멀리 떨어져 살았는데.. 분명 전복과 관련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모두 다루어야 할 기사일 거고... 복잡하게 여러 생각들이 뒤엉켰지만, 어쨌든 다른 조건을 다 떠나서 책임감 있게 일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마음 한 구석으로부터 '놀러 가듯 따라 갔다 와~'라는 목소리가 울리더라구요.

'선배, 갈게요. 재밌겠어요.'

마지막까지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어 선배에게 '말해버렸'습니다. 사실 그 때까지도 자신 없었어요. 전화를 끊고서도 '내가 왜 그딴 소리를 했나!'라고 생각했었죠. 아무튼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여차저차 실무자와 실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떠나는 당일이 왔죠. 


양심의 가책 없이 자신있게 '끝도 없이 차를 달렸다'는 표현을 써도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사당동에서 출발, 장장 여섯 시간 반을 오직 남쪽만 바라보며 내달렸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행선지는 통영이 아니라 완도였고(사실 이제와서 그게 무슨 상관?), 일행은 저를 포함한 남자 넷이었습니다. 뭔가 내가 남자여서 미안할 분위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 분들 말로는 남자를 '원했다'고 하더군요. (아... 뭔가 H스러워 지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저를 제외한 세 사람이 두 시간씩 나누어 운전을 했어요. 방금 마지막 터치를 한 듯한 수채화처럼 저녁 노을이 발갛게 번져갈 때 쯤 겨우 완도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완도 땅에 발을 내딛은 네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기지개를 켜댔죠.
전복 출하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의 이사님께서 우릴 마중 나오셨습니다. 브리핑 겸 식사를 위해 시내 모처로 이동,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사님께서 어찌나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시는지...

식사를 마치고 예약이 된 숙소로 갔어요. 숙소의 인상이 너무 강했기에, 사진으로 몇 장 담아왔습니다.


숙소 바로 앞이 바닷가였어요. 밖으로 나와 밤 바다 바라보며 일행과 맥주 한 잔 더 했습니다.


완도에서도 전복을 만나려면 청산도나 노화도로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화흥포에서 배를 타고 30분정도를 가면 노화도에 닿을 수 있습니다. 다음날 일찍 배를 타고 가기로 하고 숙소로 들어갔어요.

잔듯만듯 일어나 샤워를 하고 채비를 마친 다음 밖으로 나왔어요. 현지의 가이드로 변신하신 업체측 이사님께서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다들 피곤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사님께서는 꽤 서두르는 눈치셨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안개로 인해 예정된 시간보다 삼십여분 지나서 뱃머리가 바다를 향했습니다. 배를 타본 것도 실로 오래간만이었어요.


노화도에 도착한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차를 타고 20여분 쯤 섬을 가로질러 들어가면 당산포구가 나와요. 거기서 조그마한 작업선을 타고 그 앞바다로 나가야  목적지인 전복 가두리 양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전복이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는 것쯤이야 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기 힘들 줄이야...

 
생각해보니 그동안 전복이 살아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더군요. 주로 이미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왔거나, 썰어져있거나, 그것보다 훨씬 잘게 썰어져 있는 모습만 봐왔던 거죠. 이것도 한이라면 한풀이는 제대로 하고 온 것 같네요.

완도가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전복의 80%를 감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완도 전복이 유명한 이유는 전복이 자라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래요. 15도 내외의 수온과, 청정해역에서 자란 먹이(하절기에는 다시마, 동절기에는 미역).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완도산 전복이라 하면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어쩌면, 가두리 양식장까지 간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 속에선 이미 클리셰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방금 전에 잡아다 올린 전복을 시식할 시간이 왔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살만 발라낸 전복을 생수에다 뻘만 씻어내고 통째로!!! 뜯어 먹는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포인트는 남도의 손맛 진하게 머금은 묵은지와 깍두기! 노화도 앞바다에서 호사의 끝을 보고온 기분입니다. 아직도 생각나네요...


전복 맛도 보고! 기분 좋게 다시 뭍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습니다. 배 위에서 작업했던 전복들은 돌아갈 때까지 바다 물에 담궈 놓습니다. 행여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상하게 될까 우려해서 그렇대요. 그래서 배 위에서도 일사천리로 작업을 진행하죠. 서울에서 싱싱한 전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여러 사람의 수고 덕분이었어요.

 

배를 돌려 다시 완도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했습니다. 앞서 완도의 환경이 맛 좋은 전복을 길러냈다고 했는데, 그것 뿐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완도의 전복에는 어민들의 부단한 노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전히 쉽게 장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고급 해산물이긴 하지만, 그동안의 어민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가격도 힘들었겠죠? 이건 고급 정보인데, 내년 쯤이면 지금보다 더 싼 가격에 즐길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후훗~

서울을 출발하면서는 '아무리 그래도 일인데'라는 생각이 더 짙었어요. '머리도 식힐 겸'은 정말 '겸'일 뿐, 그래도 이건 일이었으니까... 그치만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봅니다. 그간 나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꽉 조여 놓았던 알맞을 정도까지 느슨해진 것을. 완도까지 달려가 맛보고 온 것은 싱싱한 전복, 그리고 남도 고유의 여유로움이었어요.
어쩌면 이번 여름의 휴가를 대신해야 할지도 모르는 여행이었습니다. 돌아올 때의 먹먹함이 싫어 남들처럼 여행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만큼은 뿌듯했어요. 일박 이일의 짧고 급한 일정이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상병스런 태닝 흔적은 안타까운 기념으로 남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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