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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

[Collection] 2011 S/S Men RTW <Givenchy>


남자가 레오파드를 입는다는 것...

이미 몇 해 전에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아프리카 풍의 비트가 유행할끼다~'라며 앞으로의 음악이 흘러갈 방향을 논했던 한 친구가 있습니다. 트렌드는 하나의 흐름고, 그 흐름은 성격상 영역의 구분을 따로 두지 않죠. 그래서 그 친구의 예측대로 음악에 아프리카 바람이 불자 지난 시즌의 런웨이를 바라보면서는 늘 그 친구의 말을 떠올렸어야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프리카가 디자이너들에게 남긴 영감이 꽤나 짙었나봅니다.


다소 음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지방시의 컬렉션.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는 암흑과 같던 중세시대를 쇼의 전반에 깔아두고 그 위에 섹슈얼리티를 흐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믹스는 언뜻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극적인 대비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겁니다. 
블랙과 화이트를 기본으로 베이지 핑크 톤이 등장한 가운데, 선택된 한 가지 컬러로 기본적인 무드를 여실히 표현했습니다. 그 위에 다소 그로데스크한 느낌의 가면을 매치, 음침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해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절제된 분위기는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재단된 의상들에서도 나타나죠. 
다소 심심하게 흐르던 분위기는 결국에 뒤집히고 맙니다. 마치 보는 이의 뇌리에 반전을 '꽂아'버리듯, 리카르도 티시는 메인 패턴으로 섹시함의 상징인 레오파드를 선택했습니다. 쇼의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레오파드 패턴은 재킷, 블루종, 팬츠, 셔츠를 비롯한 이너, 그리고 슈즈에 까지 골고루 등장합니다. 다소 파격적이란 느낌이 드는 코디네이션도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착장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이었어요. 소화하기에 따라 '날티'가 될 수도 있는 패턴인데, 워낙 절제된 디자인을 베이스에 깔아둔 탓에 가볍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이 적당한 '밸런스'겠죠.
레오파드 패턴은 흔히들 머리 속으로 떠올리는 그 컬러 톤 그대로 사용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화이트 셔츠에서도, 블랙 재킷과 팬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언에 의하면 레오파드 패턴의 슈즈도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과연 세일즈로 어떻게 연결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 하나 더 생겼네요.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어요. 레오파드 패턴이라 하면 그간 주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일종의 '상징'인데, 남자들이 입었을 때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간략한 설문조사를 한 번 해봤어요.

설문은 복합예술클럽 '게으른'에서 익명투표로 이루어졌습니다.


결과를 받아보고서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앞선 질문에서는 당당하게 '상관없다'고 답해준 그녀들이, (물론 소수긴 하겠지만) 막상 자기의 남자친구가 입고 나타났을 때는 실내로 들어가거나 심지어는 '도망'을 선택하겠다고 하네요. 어쩌면 설문지에 컬렉션 사진을 예시로 들어서 '상관없다'는 대답에 좀 더 쏠렸으리라는 예상도 하게 되었습니다. 별도로 첨가해준 의견들을 정리해보면 '포인트로 매치하는 것은 그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할테지만 올-레오파드라면 별로...'라는 정도. 제 생각도 마찬가지라 다음 시즌엔 꼭 레오파드는 아니더라도 포인트가 될만한 아이템 하나쯤 함께 입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 봄, 여름 시즌의 지방시가 강렬하게 다가왔고, 여전히 머리 속에 남아있습니다. 에스닉 보다는 어반을 편애하는 쪽인데, 최고로 손꼽을 만큼 지방시의 무드는 섹시했고 아름다웠어요. 일각에서는 '너무 그대로다'라는 의견도 보이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저 역시 2010 S/S 컬렉션을 본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던만큼, 좀 더 과감한 시도가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지방시!'라는 감탄사가 연달아 터지는 그 다음 시즌이 오고 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