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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들 - 이규만 감독/ 박용우, 류승룡, 성지루, 성동일, 김여진 등


누구에게나 덮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치부라 여길만한 일이라던가, 너무 고통스러워 추스르기까지 힘들었던 일들은 감추고 싶기 마련이죠. 그렇지만 남 이야기라면 달라집니다. 흥미로워 하며, 보고 또 듣죠. 그리고 가볍게 여겼던 만큼 쉽게 잊기도 할 겁니다.


1991년 사건 발생 당시는 물론, 그 후로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을 각색한 영화 <아이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실제 나이로 따지자면 소년이라 부르기 어색한 그들은 결국, 실종 십 수년이 지나서야 유골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단순 실종이냐, 타인에 의한 살인 사건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이미 무의미해졌죠. 그렇지만 미결 상태에서 공소시효가 만료된 탓에, 우리는 아직도 어찌 됐는지 그 영문을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년들의 부모님들은 영화로 인해 다시 세간의 뒤늦은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벌도 바라지 않을 테니, 이유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현재의 심정을 밝히더군요. 짐작마저도 죄송해졌습니다.

 

영화를 통해 보는 이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 지는 까닭은 류승룡(황우혁교수 )이 등장 첫 장면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때문입니다. 심리학 교수인 그는 강의에서,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이 무너지게 될 때 필사적으로 자기가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그 예로 종말을 믿는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약속된 시간에 종말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더욱 굳게 다지는 사례를 들었죠. 그런데 설득력 있는 추론으로 실종 사건의 범인을 소년의 부모로 지목한 그가, 오히려 조사 과정에서 지독한 인지부조화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인지부조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모티브라 할 수 있어요. 나아가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하죠. 그리고 관객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질문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과거와 현재의 모습 속에 인지부조화가 있지 않나 의심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리 냉정하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분명히 있더군요. 물론 밝히진 않겠지만요.

 

동행한 이에게 잘 봤다고는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그 동안 제가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들이었어요. 그렇지만 평소의 취향 따위야 어쨌건분명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분명 범인으로 보이는 놈이 하나 있었어. … … 여기선 못 잡아도, 다른 데서 분명 잡힐 거야.’

 

영화는 끝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영화를 본 감상은 물론, 다시 그 사건마저 희미해지겠죠. 그래도 이 이야기가 언젠가는 올바른 결말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