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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1Q84 - 무라카미 하루키


<야나체크 - 신포니에타 알레그레토>


이제와 발견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요즘들어 유난히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들어 '허구와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어느 쪽이 먼저인지,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들이 히트를 침과 동시에 인문학 코너에서는 장자가 인기를 끌고 있죠. 애써 현재의 단상을 분석해가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뻔하고, 지루한 건 어쨌든 별로잖아요.  영화 <인셉션>이 꿈과 현실을 심하게 오고 가는 이야기로 여럿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더니, 그와 동시에 1Q84의 세번째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이미 일본에서 출간 됐다는 소식을 들었던지라, 번역본이 나오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차였어요. 공교롭게도 제 삼 권은 <인셉션>을 보던 날 구입했네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서점의 카운터 바로 앞에 '산지 직송 손두부 - 특별행사'를 연상케하듯 진열되어 있던 그 모습입니다. 서점 측에서 기대한만큼 보도되는 소식을 봐도 대단하긴 대단한가 봅니다. 

순서대로 놓은 것 아님;;


1권과 2권에 까지 이어졌던 내용들이 가물가물 했기에, 3권을 읽으면서는 기억 위로 그동안 켜켜히 쌓여버린 먼지들을 털어 가야만 했어요. 그런데도 딱히 불편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마치 '이때 쯤이면'을 알고 있었다는 듯, 적당한 시점에서 은근슬쩍 '그때 이랬었잖아'를 말해주었기 때문이죠. 
결말(3권까지의)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정도의 결말입니다. 그렇다고 결말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앞서 언급했듯, 최근의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길들여진 탓이라 생각할 뿐이죠. 개인적으로는 결말까지 가는 과정이 조금은 허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허구와 현실의 '연결'은 두 가지를 등장시키는 동시에 어떠한 매개체도 필연적으로 등장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룰이 생겨버립니다. 그 룰 때문에 보는 이의 감상이 어떻든 소설은 그 장면을 '아 이거 완전 기발하지?'라는 듯 이야기 해야만 하는거고요.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선 이를 다루는 많은 사람들이 '딱히 구분하기 애매함, 둘은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이라는 흐름을 타요. 반론을 하기에는 너무 멋진 생각이 오래전 장자에게서 나와버렸고, 그래서 어쩔 수 없죠. 극적인 무드를 부여하기 위해선 분명히 그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필연적으로. 실제로 허구와 현실이 접점이랄 것도 없이 딱 붙어있다고 해도(물론 본 적은 없지만) 그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야만 하는 거에요.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제가 쓴대도 비슷했겠죠. '장'을 외치면서 들이 밀어봤자 '사'가 슬쩍 막아 선다는 걸 보고 있는 누구나 알고 있듯... 

결국 1Q84라는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새롭다'라고 느낄 법한 포인트는, 이제는 살이 직접 닿지 않아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임신이 세상에서 젤 쉬웠어요...? 그 정도?

나름 얼짱포즈 중이심


단언컨대,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외국 작가도 없을 겁니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어쩌다 심심풀이로 그의 저작 중 하나 정도를 '최소한 깔짝' 거려본 경험은 있을테니까요. 찬찬히 살펴보면 가까이하기에 그리 친근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그의 단편들을 보자면 더더욱) 합니다. 그런데도 커버에 그의 이름만 있으면 일단 판매는 어느정도 보장되는 듯해요. 어쩌다 서점에 가보면 '하루키 코너'(어디까지나 서점과 출판사의 공모에 의한 프로모션이겠지만, 그것도 다 될법하니 하는거 아닙니까)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죠.
손으로 만지면 '퍼석'하고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이 드라이한 문체, 적당히 환타지를 심어 놓은 플롯, (등장인물 누가 됐든)요리하는 장면에서는 허기를 저절로 느껴버리게 하는 특유의 묘사력, 적당히 젠척하는데 도움이 되는 센스(특히 패션센스) 등은 그의 저작이 공통적으로 가진 매력(이 되다가도 아니 되기도 하지만)일 것입니다.
팬과 안티는 비례하는 것인지, 어디가서 그의 팬이라고 말하기 무섭게 그의 안티를 자처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재밌는건 좋고 싫음을 밝히는 거야 솔직한 의견 교환이니 그렇다 치겠는데, '싫음'을 밝히는 분들 중에는 '아직도 하루키 따위나 보냐'하는 코드를 깔아두신 분들도 꽤 있다는 거죠. 좋고 싫음을 두고도 우열을 가려야 하다니... 기호에 너무 보수적이신 것 아닌가요? 

판형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1Q84 시리즈는 단번에 읽어 내려가기 부담스러운 두께를 자랑합니다. 제 3권을 모두 읽고 책장에 꽂으면서 비로소 발견한 사실인데, 1권이나 2권보다 훨씬 두껍더군요. 세 권을 합치면 천 오백 페이지는 훌쩍 넘어설 것 같습니다. 트위터에서 인연을 맺은 한 친구는 '무거워서 핸드백에 넣어 다니기 힘들어요~'를 토로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걸 보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야기긴 한가 봅니다. 그렇지만 3권을 덮고 나서는 그런 생각 보다는 다른 쪽에 무게가 실리네요. 어디까지나 심술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소설의 스토리가 대단해서 읽는 사람들 보다는 남들이 다 좋다길래 1권,2권 사봤는데 3권 안 사놓으면 뭔가 찜찜할 것 같아서 사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솔직히 말해서 그의 소설이 대단하다니까 '소설은 이런게 좋은거군!'하고 보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요. 

최근의 또 하나의 현상인 하루키 패러디 ㅋㅋㅋ


3권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4권이 나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죠. 정작 하루키는 점잖게 '어쨌든 이야기는 앞에도 있었고 뒤에도 있다. 4권? 그건 나도 모른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는 자위를 했다. - 몹쓸 개그-_-)'라고 이야기하는 데도 말예요. 하루키의 말대로 앞에도, 뒤에도 이야기는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나오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니다' 쪽입니다. 사실 나온다고 해서 제가 출판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것도 아니니까요.

앞에도, 뒤에도 이야기는 있다니까 생각해봤습니다. 4권이 나온다면... 덴고와 아오마에가 서있던 꽉 막힌 외곽 도로는 마지막까지 그들을 추격하던 스킨헤드와 포니테일이 어떤 이유에서 사고를 낸 까닭이지 않을까 하고... 쉽게 말해 돌고 도는 거죠. 이 생각에 한 친구는 '그거 완전 하루키적이다!!!'라고 했는데, 흐흐.. <그리고 함께 달을 보던 중에 덴고가 슬그머니 화장실로 가서... 자위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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